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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깨고싶지 않았어.
하지만, 이미 깨버렸다면 살아가야지. "
로빈 크루샤 Robin Chrusha
남성 | 외관상 27세 (실제나이..300..살쯤) | 178cm(굽 6cm)*67kg
로이즈리드 부기사단장
[ 1 ]
그는 본래 인큐버스로 탄생했다. 환상과 실제의 언저리에 존재하던 그 존재는 성인이 막 되어 인간의 꿈속에 녹아들 즈음에 뱀파이어에게 물어뜯기고, 그때의 빈 기억 속에서 뱀파이어로 변이되었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이종족이건 붉은 피를 흘리고 철 냄새를 풍기면 그것을 달콤한 향으로 느꼈다. 하루, 이틀 안에는 일정 이상 흡혈을 하지 않으면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고, 당장에라도 피부를 찢어낼 수 있을 것처럼 송곳니가 날카롭게 돌출되고는 했다. 나중에 송곳니를 숨기는 법을 알게 되었지만, 눈동자는 그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햇볕 아래에서, 목이 타는 갈증 속에서, 달큰한 혈향에서 그는 붉게 물든 눈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상대와 사냥감을 혼동하고는 했다.
그는 본래의 종족이 무엇일 지도 모를 만큼, 본래의 종족으로 살았던 시간의 몇 배를 뱀파이어로 살았다. 인큐버스일 때 꺼내곤 했던 날개나 뿔 같은 것들은 이제 그 형상이나 잠깐 드러낼 정도. 더는 본인의 날개가 아니라 실제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더는 꿈에 녹아들 수 없고, 어둠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은신할 곳일 뿐이었다.
뱀파이어가 되어 어둠은 소유할 수 없게 되었고, 빛은 적이 되었다. 햇볕은 그의 생명력을 빨아가는 것처럼 그를 쉽게 피곤하게 했고, 쉽게 갈증 나게 했다. 햇볕에 노출될수록, 그는 더 많은 갈증을 호소했다.
그래도 인간과 함께 살고 싶었다. 인간을 사냥감으로 바라보는 자신을 스스로 혐오하고 배척했다. 절대로 사냥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송곳니로 흡혈하지 않았다. 인간들에게 정당한 거래로 구매한 피를 마시거나, 그것도 안 되면 동물의 피를 마셨고, 어쩌다가 생피를 마셔야 할 때에는 송곳니 대신 칼로 상처를 냈다. 무던히도 애썼다. 언젠가, 아주 먼 기억 속에 죽어가는 인간의 눈이 하나라도 더 생각날 때면, 의미 없이 송곳니를 갈아낼 때도 있었다.
그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삶 속에서 꽤 인간다운 대우를 받았지만, 인간과는 신체가 꽤 달랐다. 인간보다 체온이 낮은 것, 근육량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인간보다 몇 배는 센 근력 같은 것. 약을 먹거나 주사해도 듣지 않는 것. 인간이 흔하게 걸리는 병에는 걸려본 적도 없고, 만약 상처를 입어도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재생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다른 것은, 인간을 죽이는 방법으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쟁중에는 꽤 다양한 방법으로 죽을 뻔 했지만, 인간의 기준으로는 여러 번 죽었을 것이 증거였고, 그 전쟁이 몇 세기나 전인데도 살아있는 것이 증거였다. 그를 죽이려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은 거의 없다. 아, 심장에 말뚝을 박아본 적은 없다. 이제는 그를 살해하려고 시도할 사람은 수명이 다해 죽고 없다.
그 본인이 겪어본 바로는, 보통 인간이라면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상처에 가까울수록 재생이 빠르다. 심장을 찢으면 그 자리에서 재생되고, 종이에 긁힌 상처는 하루 정도는 아프고는 했다. 그 재생력은 그의 피 자체에 있는 것이라서 그 피를 다른 존재의 상처 위에 쏟아내면 그 상처가 재생되고는 한다. 이때는 치명상을 입은 것처럼 말끔하게 재생된다. 로빈은 굳이 자신의 피부를 찢어 피를 내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임에도 남의 상처에 꽤 잘 쓰곤 했다. 아픔을 덜 느끼는 건지, 그저 무뎌진 건지.
은으로 된 것에 입은 상처는 꽤 오래가곤 한다. 그의 혈액이 은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처럼. 상처의 주변이 한동안 타들어 가듯이 계속 악화한다. 순식간에 곪거나 덧나기도 한다. 이 상처는 재생되려면 보통의 상처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은에 입은 상처를 포함한 모든 상처와 재생은 그에게 갈증을 일으킨다. 출혈이 심하면 갈증이 심할 때의 상태를 보인다. 시야가 흐려지고, 후각이 예민해지며, 동료와 사냥감을 구분 못 하는. 이때 사냥감을 물어뜯으면 상처가 회복되긴 했다. 다른 상처가 생겼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꽤 괜찮은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다. 타인의 인기척에 예민하고, 적의 혹은 살의를 쉽게 알아차리고는 한다. 마치 언젠가 사지에 있던 사람처럼. 종종 현장을 수습하러 갈 때에는 그가 전투에 익숙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지만, 또 가끔은 그러지 않았어야 할 부분에서 상처 입기도 하고, 가끔은 총을 들고 입으로 일을 해결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종종 총을 발포할 때는, 한 손만 사용한다.
[ 2 ]
1.
대체 무엇으로 덮었는지, 수없이 덧칠되고 시간이 흘러 검게 변한 것 같은 새까맣고 네모낳기만 한 관. 그 관의 중앙에 진한 무언가로 파내어 장미모양의 음각을 만들고 있었다. 짙고 진하고, 무엇인가를 닮은 모독적인 붉은 장미.
그것의 문을 열때, 묘한 이질감이 든다. 마치 이세계의 것이 아닌 것처럼 소리없이 열리는 관, 안을 채운 한기와 짙은 피냄새. 안에 누워있는 이는 창백하고, 차고, 굳어있는 것이 꼭 시체의 모습을 했다. 소리없이 열리는 눈꺼플 아래에 형형하게 굶주린 새빨간 눈. 머리를 덮은 머리카락은 허리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새빨간 눈과 얇은 몸이 일어나 먹을것을 찾기 시작햇다. 짙고, 비릿하고, 또 무엇보다 달콤한 피. 수십년의 굶주림을 채워줄 수 있는 생기 가득한 혈액. 송곳니는 그가 날것을 물고 피를 내는 것임을 증명하는 것 마냥 돋아났고, 그의 붉은 눈과 예민한 후각은 빠르게 영양가 있는 먹이를 찾아낼 것이다.
2.
오랜 세월을 전쟁의 최전선에 있었다. 마족들과의 전쟁, 다른 나라와의 전쟁, 왕위 찬탈을 하려는 세력과의 전쟁. 로빈은 언제나 그 가장 앞 자리에 있었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과 슬픔을 목격하고, 아주 자주 그것의 주체 혹은 원인이 자신이 됐다. 수없이 이어지던 전쟁은 영원히 이어질 생각은 없다는 듯 막을 내렸다. 그 오랜 전쟁에 세계는 폐허가 됐다. 남은건 승전국의 나라들의.. 가장 강한 이들 뿐이었다. 그리고, 불사의 몸도.
불사의 몸을 가진 로빈은 당연스럽게도 살아남았다. 전쟁의 기억이 새겨지듯 머리에 남았고, 그것은 영원히 따라다닐 것처럼 머릿속에 들어앉았다. 하지만, 하지만. 강한 사람만 제 곁에 있던 것은 아니어서. 수많은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났고, 로빈은 다른 이들처럼 강인해서 살아남은게 아니었다. 사랑하던 사람들을 잃은 슬픔을 그가 온전하게 다 감당할수는 없었다. 자신의 손에 죽은 적진의 연인, 자신의 주군을 구하다 죽은 스승, 부모를 잃은 아이들. 자신이 키워낸 부하들, 처음으로 사랑해봤던 이와, 형제에 연을 맺었던 이. 다 읊을 수도 없이 수없이 많은 것들. 그들의 살아있는 얼굴을 다시 볼 수도 없고, 그들에게 속죄할 방법도 이제는 남지 않았다. 그것을 다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관에 들어가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렇게 수없이 땅에 죽음을 불러온 스스로를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깊은 잠에 빠졌다. 몇십년, 몇백년을 끌지도 모를 깊은 잠을.
3.
제가 입은 옷 외에 관 안에 남은 것은 귀걸이 한 쌍이었다. 그것은 금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누군가는 거기서 마력을 읽어냇을지도 모르겠다. 제것이 아닌 옷인양 커다란 옷은 어깨에 걸쳤다. 식사를 마치면, 그는 체온을 되찾고, 차분하게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4.
그런 그가 공백에 오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관을 지키는 이가 자리를 떴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지키는 이를 가져가려다가 상대를 실수한 걸지도.
5.
그는 습관적으로 머리를 올려묶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입가를 닦고, 차분한 어조로 인사를 건넨다. 왕실에서 지낸 이가 쓰는 단정하고 깔끔한 단어선택, 마치 모든 이의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타인을 하대하는 태도. 체온은 한참을 올라도 낮을 것이고, 오늘의 식사가 앞으로의 식사를 모두 대체하지 못할 것이었다.
[ 3 ]
헐렁한 슬리브셔츠. 그 위에는 마법이 걸린 옷이 덮여있었다. 누가 봐도 제 것이 아닌 사이즈의 옷으로 몸을 덮으면, 안 그래도 얇은 몸이 더 얇아보이기까지 했다. 슬리브 셔츠 아래로 보이는 얇은 손목, 팔을 걷어보면 몸이 성한 곳이 없는 듯 흉터가 낭자했다. 소매나 바지 끝자락, 머리칼을 올려묶는 목 뒤. 하얗게 피부가 드러나는 부분들에서는 그가 인간보다 몇 배씩이나 더 한 힘을 쓸 것으로 예측하기 힘들다. 수려한, 어떻게 말하면 여리 한 몸 선도. 그가 가벼움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단정한 습관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외모는 항상 깔끔하게 유지했고, 피곤한 인상이라도 올라올 것 같으면 메이크업이라도 해서 덮을 때가 있었다. 자주 장갑을 꼈고, 가볍게 셔츠만 걸친 상태에서도 옷이 흐트러지거나 구겨진 상태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머리칼은 항상 묶어 올렸고, 눈을 가리지 않는 앞머리 길이, 묶은 채로 앉아도 옷에 눌리지 않는 뒷머리 길이에도 일일이 신경 써서 관리하고는 했다. 본인은 습관이라서, 신경 쓴다고 표현하지도 않지만.
그가 근처를 걸을 때는 구둣소리가 난다. 그가 캐주얼한 옷을 입는 것을 찾아보기 힘든 것처럼, 구두 외의 다른 신발을 신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뒷굽이 꽤 높은, 검은색 단정한 구두.
[ 4 ]
스스로가 인간의 곁에 머물기를 선택했다. 모독적인 존재로 태어나서, 더한 존재의 피가 섞였음에도. 인간은 흡혈귀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자신의 본성 역시 그들을 먹잇감으로 보는데도. 그런데도. 세상을 포식자와 피식자로 나누기를 포기했다. 자신이 선택한 지금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갈증이 조금 있어도 괜찮았고, 자신이 미식가이기를 그만둬도 괜찮았다. 맛있는 피를 영영 못 먹는다면, 그 대신 인간의 간식을 한입 대어보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갈증에 끓다 생을 마감하여도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릴 사람이었다.
인간을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곁에 오래오래 남은 이도, 비극적으로 떠난 이도, 황제의 곁에서 몇 세기나 인간의 나라를 지켜냈다. 그가 칼을 든건, 공격이 아니라 보호의 목적이었다. 사랑하는 것들이 더이상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최후의 방패. 그것은,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검이기도 했다.
정의로운 모습을 한다. 무고한 사람이 당하는 것을 못 보고, 이존재들이 범죄에 노출되어있거나 버려져 있는 것을 그냥 못 지나치며, 여자와 아이를 우선하는 저렴한 기사도 같은 것만 보면 그렇다. 다만 그는 그런 모습을 애써 만들어냈다. 교육받아 생성된 모습이었다. 태생이 마족으로 태어나 정의와는 거리가 멀어서, 아주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그가 '보편적으로 정의로운'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을 느낄 수 있을 때가 있다. 정의에 너무도 큰 가치가 밀려 있을 때.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먼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
[ 5 ]
" 체스터. "
그 이름을 읊으면, 마치 체스 말의 모양을 하고 있는 손잡이부터, 새하얀 검신이 원하는 길이만큼 소환되어왔다. 새하얀 검신 위에는 장미넝쿨과 꽃이 그려져있고, 자신은 검의 끝에는 장신구가 달려있다. 마력을 쓰는 만큼 날카로워져 더 쉽게 배어지기도 하고, 더 무딘 칼이 되기도 했다. 그 검은 일종의 의지, 기분, 자아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타인의 손에 머물지 않는다. 로빈은 가끔 그와 대화도 한다는데.. 모를 일이지. 가끔 검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보일때가 있긴 하다.